창문 밖에서 싸움 소리가 들렸다. 길거리에 취객이 나돌 정도로 비가 그친 모양이다. 내 방은 소방서와 아주 가까웠다. 밤새 세 번이나 사이렌이 울렸다. 간밤에는 비가 왔으니 불이 났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가끔 버스 소리가 들렸다. 간간히 소형차가 빠르게 달리는 소리도 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철 소리도 들릴 것이다. 곧 첫 차가 다닐 시간이었다. 창...
택배 상자는 생각보다 컸다. 상자를 열자 스테인리스 막대기 몇 개, 플라스틱 막대 몇 묶음, 바퀴 네 개가 나왔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빨래 건조대였다. 조립을 마친 빨래 건조대는 나보다 약간 작았다. 좌우로 펼친 날개가 한쪽에 세 개씩 총 여섯 개. 10kg 드럼세탁기에 빨래를 꽉꽉 채워 두 번 돌려도 넉넉히 널 수 있었다. 빨래를 몰아서 하는 습관 때문에...
회사에서 나단의 횡령 사실이 드러나게 되었다. 나단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가 틈틈이 모은 금액은 적지 않았다. 나단은 그의 통장이 지급 정지가 되기 전, 통장에 모인 돈을 모두 뽑아 도망치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행동이 잘못된 것이라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훔칠 수 있는 기회가 눈앞에 있는데 왜 가만히 두는가? 만약 자신과 같은 상황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017년 3월 13일 나는 단어를 안다. 이 문장에서 1.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이다. 만약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을 멈춘다면, 그때부터 ‘나’는 이 글을 쓰는 것을 멈춘 사람을 의미한다. 하지만 지금은 이 글을 쓰고 있으므로, 이 글이 쓰여지고 있는 한은 이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을 뜻한다. 2. ‘단어’란 뜻을 가지고 있는 글자다. 예를...
자비에가 이 시골 도시에 도착한 건 악연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던 다짐이 무색하게도, 물려받은 집 한 채를 매몰차게 팔지 못했다. 시내에서 가깝지도 않고, 풍경이 좋지도 않은, 겨울 마을 구석에 있는 2층짜리 집. 다시 돌아온 고향 집은 자비에가 가족에게 쌀쌀했던 만큼 쓸쓸했다. 이미 이렇게 될 것을 예상이라도 했는지, 누군가 살다간...
─ 누군가는 우리를 저승사자나 악마로 묘사한다. 하지만 우리는 비즈니스맨일 뿐이다. 자본주의 정신에 확실하게 입각한. ‘당신만을 위한 특급 의료 서비스’ 영원 병원은 그 슬로건에 걸맞게 최첨단 의료 시설을 갖춘 것으로 유명했다. 그에 반해 병원의 설립자는 설립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는데, 이것 때문에 사실은 재벌이 설립한 병원이라느니 대한...
란은 새벽 여섯 시에는 무릎을 꿇고 묵주를 들고 기도를 했고, 열한 시 반부터는 이어폰을 끼고 무언가 중얼거렸다. 거실 한 편에는 앉은뱅이책상이 있었고 그 위에는 란의 신앙생활을 위한 A to Z가 있었다. 성모상에는 먼지 방지 코팅을 한 건지 때가 묻는 일이 없었고, 누런색 테이프로 책등을 한 번 싸맨 성서는 놓인 위치며 덮인 모양새까지 매일 똑같았다. ...
"피어싱 예쁘네요." 남자가 웃으며 제 귀를 두드렸다. 이등석 칸에 둘이 앉아 여행한 지 2시간 만이었다. 객차 내에는 남자와 나뿐이었다. 암살 대상에게 접근하기 위해 나머지 두 자리는 회사에서 예매했을 것이 뻔했지만...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오늘 기차 이용객이 적은 것 같다고 무심하게 얘기했다. 남자는 활짝 웃었다. "어디까지 가는 길이세요?" ...
나와 예현은 언제쯤 자리를 떠야할까 고민 중이었다. 내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B의 생일파티에는 낯선 사람들이 한가득이었다. 좀처럼 취하지 않는 B의 얼굴이 조금 빨갛게 물들었을 때, 나는 있지도 않은 통금을 얘기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B는 고등학교 때도 없었던 통금이 성인이 되고 나서 생긴 거냐며 웃었고, 예현이는 나를 데려다주겠다며 따라 일어났다. “어디...
. . . "Did you... get up?" The man who came to my house yesterday. cause I felt awkward and lonely living alone. When I bumped into him in the morning, I wondered if I had done something useless. But ...
. . . "일어... 나셨어요?" 어제부터 우리 집에 들어와 살게 된 남자. 혼자 지내는 게 어쩐지 어색하고 적적해 들인 사람이다. 막상 아침에 마주치니, 어쩐지 괜한 짓을 했나 싶기도 하다. 그래도 아침에 나가서 저녁에 들어오는 사람이니 용돈 벌이나 한다고 생각해야지. 택배를 배달하는 그 사람은 우리 집에 들어오면서 한 가지 조건을 제안했다. 이 집에 ...
고등학교 입학식을 마치고, 배정받은 반에서 서성였다. 일주일 정도는 누구와 친해질지 눈치를 봐야 했다. 같은 중학교에서 올라온 애들, 같은 초등학교였던 애들. 전전하며 돌다가 그저 그런 조용한 애들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네 명. 짝수다 싶어 안심했는데, 다음날은 어쩌다 보니 나 빼고 세 명이 쪼르르 가운뎃줄에 앉아서, 나는 뒷자리에 앉아야 했다. 내 옆자...
이잠이는 거꾸로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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